호주에서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, 오른쪽 운전석도 반대 차선도 며칠이면 적응이 됐어요. 그런데 딱 하나, 꿈에서도 식은땀이 나던 최종 보스가 있었어요. 바로 라운드어바웃(Roundabout), 회전교차로예요.
신호등도 없는 동그란 교차로에서 차들이 쌩쌩 도는데 도대체 언제 끼어들고 언제 나가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왔어요. 그러다 결국 사고를 칠 뻔한 날이 왔습니다.
욕먹은 그날의 흑역사
시드니 외곽으로 처음 드라이브를 나갔을 때였어요. 네비게이션이 “Go straight at the roundabout”라고 하더라고요. 직진이니까 깜빡이 안 켜도 되겠지 싶어서 그냥 진입했어요.
그런데 출구로 빠져나가려는 순간, 맞은편에서 막 진입하려던 차가 저를 보고 급정거하면서 경적을 “빠아앙-!!!” 하고 길게 울리는 거예요. 창문이 열리더니 호주 아저씨가 소리를 질렀고, 저는 너무 놀라서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뒤차까지 연달아 빵빵거리는 아비규환이 됐습니다.
알고 보니 제가 나갈 때 좌측 깜빡이를 안 켰던 거예요. 상대방은 제가 계속 원 안에서 돌 거라고 생각하고 진입한 거였고요. 깜빡이 하나가 사고를 부를 뻔한 순간이었어요. 그날 이후로 라운드어바웃에서만큼은 깜빡이에 집착하게 됐습니다.

라운드어바웃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?
한국에서 오신 분들은 공통적으로 “왜 신호등을 안 달고 이 번거로운 걸 쓰지?” 하고 의아해하시는데, 이유가 있어요.
교통 공학 연구에 따르면 라운드어바웃은 일반 교차로보다 중상해 사고율이 약 75% 낮아요. 신호 대기 중 직각 충돌(T-bone 사고)이 구조적으로 발생하기 어렵고, 차량 속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효과가 있어서예요. 또한 신호가 없으니 전기도 안 쓰고 신호 주기를 계산할 필요도 없어서 교통 흐름도 더 유연해요. 호주가 라운드어바웃을 유독 선호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들 때문이에요.
진입의 절대 원칙: 오른쪽만 보세요
복잡해 보이지만 진입할 때 딱 하나만 기억하면 됩니다.
“내 오른쪽에 차가 있으면 멈추고, 비어 있으면 들어간다.”
내 오른쪽에서 이미 돌고 있는 차가 있다 → 무조건 멈춤
내 오른쪽이 비어 있다 → 진입 가능
왼쪽에서 오는 차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. 그 차들이 오히려 나를 보고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거든요. 오른쪽 빈틈이 생기면 머뭇거리지 말고 과감하게 들어가야 해요. 머뭇거리면 뒤에서 경적이 날아오는 건 시간문제예요.
욕 안 먹는 깜빡이 공식 — 이것만 외우세요
제가 욕먹은 이유가 바로 이 깜빡이 타이밍을 몰라서였어요. 한국 운전 습관이랑 다른 부분이에요.
| 진행 방향 | 진입할 때 | 나갈 때 |
|---|---|---|
| 좌회전 | 좌측 깜빡이 켜기 | 좌측 유지하며 나감 |
| 직진 | 깜빡이 끄기 (안 켬) | 출구 보이면 좌측 켜고 나감 |
| 우회전·U턴 | 우측 깜빡이 켜기 | 출구 앞에서 좌측으로 변경 후 나감 |
가장 많이 실수하는 게 직진이에요. 진입할 땐 아무것도 안 켜도 되지만, 나갈 때는 반드시 좌측 깜빡이를 켜야 해요. 이걸 안 해주면 기다리던 차들이 “저 차가 나오는 건지 마는 건지” 헷갈려서 사고가 납니다. 바로 제가 당한 상황이고요.
한 줄 요약: 들어갈 땐 방향대로, 나갈 땐 무조건 좌측 깜빡이.
2차선 라운드어바웃 — 여기가 진짜 공포예요
동네 작은 라운드어바웃은 위 규칙만 알면 충분한데, 차선이 2개 이상인 대형 라운드어바웃은 차선 선택도 중요해요.
| 차선 | 가능한 방향 |
|---|---|
| 왼쪽 차선 | 좌회전, 직진만 가능 |
| 오른쪽 차선 | 우회전, U턴, 직진만 가능 |
초보들이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오른쪽 차선에서 좌회전하거나, 왼쪽 차선에서 우회전하는 거예요. 이러면 옆 차와 100% 충돌 코스가 돼요. 진입 전에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꼭 미리 확인하세요. 라운드어바웃 안에 들어가고 나서 차선 바꾸려다가 사고 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.

1년 운전하면서 터득한 현실 생존 팁
이론은 완벽해도 실전은 달라요. 제가 직접 겪으면서 배운 것들이에요.
남의 깜빡이를 100% 믿지 마세요. 깜빡이 안 켜고 훅 들어오는 차, 반대로 켜놓고 그냥 직진하는 차가 호주에도 많아요. 깜빡이보다 바퀴가 꺾이는 방향을 보는 게 더 정확해요.
출구를 놓쳤으면 그냥 한 바퀴 더 도세요. 당황해서 급정거하거나 무리하게 차선 변경하는 게 훨씬 위험해요. 원형이니까 어차피 다시 기회가 와요. 저는 초보 시절에 이걸 모르고 출구를 놓칠 때마다 사이드미러도 안 보고 끼어들다가 식은땀을 엄청 흘렸어요.
버스와 트럭 옆은 무조건 피하세요. 대형 차량은 라운드어바웃에서 두 차선을 동시에 쓰는 경우가 있어요. 법적으로 허용되는 경우예요. 그 옆에 나란히 붙어서 돌다가는 압사당할 수 있으니 먼저 보내고 따라가는 게 안전해요.
연습 방법: 처음엔 교통량이 적은 평일 오전 10시~11시 사이에 동네 소형 라운드어바웃에서 반복해서 돌아보는 게 최고예요. 저도 그렇게 일주일 연습하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어요.
마지막으로
호주 사람들은 평소엔 느긋하다가도 운전대만 잡으면 꽤 날카로워져요. 특히 라운드어바웃에서 머뭇거리면 가차 없이 경적이 날아오죠. 하지만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요.
딱 두 가지만 습관이 되면 돼요. 진입 전 오른쪽 확인, 나갈 때 좌측 깜빡이. 이것만 몸에 배면 라운드어바웃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에요. 저도 지금은 오히려 신호등보다 라운드어바웃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니까요.







